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26일 별세했다.
고인은 평생 '우리시대 최고의 지성'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그는 생전 스스로 '실패한 삶'을 살았다고 평가했다.
'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. 그래서 외로웠다.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.'이라고 인터뷰집 '이어령의 마지막 수업'에서 회고했다.
'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하시냐'는 질문에
"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, 나는 사실상 겸손이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. 그거를 느낀다."
"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,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.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. 겸손이 아니다. 나는 실패했다.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."
"내게는 친구가 없다.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.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.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.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,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."
고 이어령 교수는 1933년 충남 아산시에서 출생. 생전 문학평론가, 소설가, 수필가, 언론인, 교수 등으로 활약하며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자 한국의 대표적 석학으로 불렸다.
이 교수는 1956년 '문학예술'에 '현대시의 환위와 한계', '비유법논고(攷)'가 추천돼 등단했다. 같은 해 문단 원로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'우상의 파괴'를 발표하며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.
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뒤 평생을 교수로 살았으며, 경향신문 등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. 노태우 정부 당시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을 역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(현 국립국어원)을 설립했다.
이 교수는 문화예술상(1979), 체육훈장맹호장(1989), 일본문화디자인대상(1992), 대한민국녹조훈장(1992), 대한민국 예술원상(2003), 3·1문화상 예술상(2007), 자랑스러운 이화인상(2011), 소충사선문화상 특별상(2011) 등을 받았다.
그는 2017년 암을 선고받아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"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"며 마지막 집필에 몰두해왔다.
이어령 교수는 성공한 삶은 주변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되돌아 본것 같습니다. 나만 성공하여 돋보이게되면 결국 주변엔 나를 쫓아오는 경쟁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.
물론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을 말씀하신것 같습니다. 결국은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사는 삶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, 성공할 수 있지만, 결국은 또다른 성공을 위한 희생양이 되거나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으셨던것 같습니다.
주변을 한번이라도 배려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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